우선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표준어에 대한 나의 견해를 간단히 밝혀두고자 한다.
과거의 나는 소위 '표준어'라고 불리는 말의 갈래가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떤
문화적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1년간의 복강 생활을 통해 나는, 이십여년간 내 머리속을 지배해 왔던 '서울만능신
화'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지방에는 지방 나름의 룰과 문화가 있고, 그것은 결코
배척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규정하는 것이 '말'이요, 곧
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
에 있어 문화적 우월성의 고저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표준어를 쓴다고 해서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니며, 방언을 쓴다고 해서 표준어
사용자보다 못난 것이 아니다.
엠파스 백과사전에 따르면,
......1988년 1월 19일 문교부(지금의 교육부)는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새로 고시하면서 표준어의 사정원칙을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고 수정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종래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총칙자리에서 〈표준어규정〉 총칙 제1항으로 옮겼다.......
라고 한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그렇다면 표준어를 쓰지 않는(또는 못하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인가? (교육인적자원부의 어리
석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다.)
물론 그것은 아니겠지. 논리학에 서투른 내가 봐도 나의
지적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저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는 부분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중류계급' 내지는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규정하는 쪽이 거부감을 덜 일으키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이란 표현이 애매하다고? 그렇다면
당신의 교양있음은 무엇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는지 물어
보고 싶군.
내가 한국어에 있어서의 표준어에 대한 규정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이유는 내가 표준어 사용자로서 가지고 있던 상대적
인 우월적 의식이 (아마도) 고교 국어책에서 얼핏 본 저 규정
에서 유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군. 표준어 사용자는 교양있는 사람이야'라는 잘못된
명제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표준어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히 밝혀둘 생각이었는데 쓸데없
이 길어진 것 같다. 원래 적으려던 내용은 이런 고리타분한 것
이 아니라 한국어 사용자로서 내가 최근에 받은 쇼크에 관한
것이다.
최근의 나는 표준어 사용자로서의 우월 의식은 이미 훨훨
털어버린 상태였지만 자신의 Mother tongue는 '서울 표
준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로 부터 들은 충격적인 한마디.
"너도 진짜 서울말은 아니야-."
뭐라고라고라고라고라?
내가 쓰는 말이 서울 표준어가 아니라고오?
어머니 왈, 아이는 부모가 쓰는 말을 표준어라 생각하며
자라기 때문에 그것이 표준어인줄 알지만 그게 아닌거지.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사투리 안쓰고 다 표준말인데?"
다시 어머니왈, 지방 사람이 들으면 그게 표준어인 줄 알겠지만
진짜 토박이 서울 사람이 보면 좀 다른 억양이 섞여있다고 한다.
쿠쿵......

뭔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정체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냥 좀 놀랐다.
그렇구나, 실은 내 말도 표준말이 아니었던 것이군.
그런데 나중에 잘 생각해보니 서울 출신의 내 친구들
중 아무도 내 말투에 대해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내 말투가 진짜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아채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별로 언급할 필요가 없
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었던 것일까?
글쎄.....아마도 그들도 다 (부모 대부터의)서울 출신이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인구 천만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이지만, 순수 서울 토박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다들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일단 표준어로 간주되지만 native
서울말은 아닌 것'을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구.
그렇다. 사실 아무래도 좋은 문제이다.
오늘의 블로깅은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지고 적었다기 보다는
어머니와의 저 대화를 통해 내 머리 속에서 수억 뇌세포가
벌인 일련의 화학적, 전기적 작용을 글로 옮긴 것에 불과
한 것이다.
사실 군대에서 좋은 후임이었던 N군이나 IWO의 워크샵에서
만난 J군 등 나는 선량하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많은 방언의
계승자들을 알고 있다. 나 자신도 복강에서의 1년동안 몸에
밴 복강 사투리가 이제는
젠 척하는 것 처럼 들리는 에도 말
보다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 함께 방언을 사랑해 보아요-
마지막으로 어릴적 제주나라에서 겪었던 방언에 관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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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어느 관광지 가게에서 컵라면을 여러개 샀다.
카운터에서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돈을 지불하자,
아주머니: !@#ㅁㄴㅇ &ㅁㅑㅕㅇ?
나: 웃??!!
아주머니: !@#ㅁㄴㅇ &ㅁㅑㅕㅇㄲㅃ?
나: 내 인상이 좋지 않으니 라면을 팔 수 없다고요?! @_@?
이러기를 5분여,
안에서 젊은 처자가 나와 교양 있는 서울 사람이 쓴다던 말로
알아들을 수 있게 통역을 해 주었다.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처자: 그러니까, 컵라면 샀으니까 뜨거운 물도 받아갈거냐고요~
나: 아, 아닙니닷! 고, 고맙습니다!
그렇다.
제주는 그런 곳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내 인생 최초의 컬쳐쇼크가 아니었던가 싶다.